10월 18일, 아침 일찍 일어나 완도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완도에서부터 시작하여 진도까지 걸어가며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조선수군재건길을 답사해본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내린 비는 그 당시 백성들의 울분을 토하는 듯했다.
먼저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지에 도착했다. 우선 충무사에 먼저 방문했다. 충무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사당인데, 그곳에 가서 해설사분의 설명을 들으니 더욱더 이해가 잘 됐다. 그곳에서 짧은 묵념을 했는데 이 나라를 지켜준 이순신 장군님께 다시 한번 경의를 표했다. 그 옆쪽에 있는 월송대에 가보니 정말로 이순신 장군님이 묻히신 곳에만 풀이 자라지 않았다.
월송대는 이순신 장군이 처음 묻혔던 곳으로 후에 충남 아산으로 옮겨졌다. 점점 더 거세지는 빗줄기에서 이곳에서부터 아산까지 이어지는 운구행렬마다 통곡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런 다음 조금 걸어서 이충무공 기념관에 도착했다. 그곳에선 중국 명나라 장수 진린과 이순신 장군의 유적들이 남아있었다. 당시에 깃발과 화포들의 모습을 실제로 보니 다시 한번 우리 수군의 위대함을 느껴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 그곳에서 난중일기와 이순신 장군의 전술집을 보게 되었다. 당시 이순신 장군께서 얼마나 이 전쟁에 대해 고뇌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후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고금 항일운동충혼탑을 보았다. 이 탑은 1920년부터 1930년까지 고금에서 일어났던 독립 만세운동과 항일 의병 투쟁 과정에서 일본군에게 참살당하고 투옥당한 애국지사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탑이다. 이렇게라도 이름 없는 애국지사들을 기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고, 한편으론 이름도 모른 채 돌아가신 많은 분의 공을 지금의 현대인들이 잘 알아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크나큰 아쉬움을 느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비가 그쳤다. 비를 가르며 도착한 곳은 완도 청해진 유적이었다. 이곳은 장보고가 상업의 요충지인 청해에 해군진을 설치해 해적들로부터 남해의 제해권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푸른 잔디와 맑은 하늘, 드넓은 바다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뻥 뚫리듯이 시원했다.
이곳을 천천히 걸어보니 장보고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방문한 곳은 해남 이진성지였다. 이곳은 이순신이 거쳐 가고 일제강점기엔 항일운동을 전개한 역사적인 장소다. 겉보기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곳이지만 과거 이순신 장군이 몸이 안 좋아 이곳에 머물면서 이 지역 주민들의 극진한 도움을 받으며 몸을 회복했다고 한다. 이곳을 거닐다 보면 우물이 하나 보이는데, 이는 주민들이 약수로 여기며 마셨다고 전해진다. 아마 이순신 장군도 이곳에서 물을 마셨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선지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장군샘’ 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또 마을 곳곳에 현무암이 많이 보이는데 이는 이곳이 제주도와의 물자를 교류한 통제소 역할을 한 이유 때문이다. 제주에서 기른 말이 이곳을 통해 들어오는 과정에서 배에 돌덩이도 함께 싣게 되어 이곳에 현무암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그 후 해남 땅끝까지 걸어보려 했으나 공사 중인 까닭에 예정보다 조금 일찍 숙소로 돌아갔다.
둘째 날 아침은 버스에 오를 때부터 기대감과 아쉬움이 동시에 느껴지며 여정을 시작하게 됐다. 사실 둘째 날은 명량대첩이 일어난 울둘목에 위치한 진도군과 해남군이 운영하는 명량대첩 축제가 한창일 때라 더욱 풍부한 일정이 계획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도착한 곳은 명량대첩비와 우수영 충무사였다.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조선 수군 13척으로 울둘목에서 일본 수군 133척 이상을 격파하며 대승을 거둔 유래없는 전투였다. 그 장엄한 기록을 이 명량대첩비에 기록해 놓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조상과의 해전에서 압승을 거둔 이순신의 명량대첩비를 보고 불쾌함보단 두려움이 먼저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해전은 세계 해전사를 통틀어 유례없는 엄청난 전쟁이니 두려움이란 감정은 오히려 당연했을 것이다. 그 옆으로 조금 걸어가면 충무사가 위치했는데 이곳에선 다시 한번 이순신 장군과 그와 같이 싸운 조선 수군,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의병들과 승병들에게도 감사함을 나타내며 묵념하였다.
한 가지 아쉬운 건 그렇게 ‘성웅’이라 칭송받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곳에 어느 누구도 모습을 비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 야스쿠니 신사나 여러 나라의 위대한 영웅의 유적지를 방문해 보면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반대이다. 이런 현실이 참 안타깝다.
그 뒤로 우수영 문화마을을 걷다 법정 스님 생가에 잠시 방문했다. 여러모로 유명하다고 생각한 법정스님의 생가를 이렇게 직접 방문해 보니 신기했다. 그렇게 법정 스님 생가를 다 둘러보고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특히 명량대첩에 초점이 맞춰진 전시가 주를 이뤘는데, 울둘목의 물살을 이용해 다수의 일본군 들을 섬멸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업적을 보고 있자니, 전쟁 직전까지 끝없이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그려졌다.
우린 그의 업적을 보고 성웅이라 칭송하지만 그의 대단한 업적 뒤에서 그를 도운 인물들과 그의 치밀하고도 철저한 준비와 전술도 기억해야만 한다.
4D 판옥선 체험과 울둘목 영상, 기념관을 다 보고 나오니 명량대첩 축제가 우리를 반겼다. 흥겨운 노랫소리와 다양한 체험 부스, 동시에 맛있는 먹거리들까지 생각보다 작은 규모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 버리게 되었다. 축제장에 있는 모두가 이순신 장군께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면서도 명량대첩의 대승을 매우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우수영 관광단지를 둘러보다 울둘목 스카이워크를 걸어보았다. 발아래에서 휘몰아치는 울둘목의 파도가 그 당시 전쟁의 상황을 보여주는 듯했다. 좁고 빠른 물살을 이용한 전술을 아마 인류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해전 전술일 것이다. 그 옆을 자세히 보면 작게 이순신 장군 동상이 하나 있다. 멋진 갑옷이나 굉장한 무기하나 걸치지 않고 초라한 그의 모습은 명량대첩 전 고뇌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라 한다.
전쟁 전 그의 머릿속은 너무 생각이 많아 복잡했을 것이다. 나라를 버린 임금, 분노하는 백성들, 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어명, 얼마 남지 않은 수군의 무기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순신 장군은 당당히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그의 일생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다. 그 후 명량 해상 케이블카를 타고 진도타워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보니 바닥이 유리로 되어 울둘목 전체를 바라볼 수 있었다. 좀 전 스카이워크보다 더 생생하게 파도와 회오리가 보였다. 진도타워에 올라가보니 울둘목과 진도군, 해남군, 그리고 축제를 흥겹게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한눈에 보였다. 그 후 나오는 길에 벽면에 적힌 글을 보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전한 진도출신 인물들의 이름과 업적이 적혀있었다. 이름이 알려진 자들도 이렇게나 많은데 우린 그중 단 한 명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들도 이순신 장군을 따르며 불굴의 의지로 왜군들을 격파했을 텐데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루빨리 많은 애국지사를 알리는 교육과 홍보가 많아졌으면 한다. 그런 다음 충무공 이순신 동상을 보았더니 좀 전에 본 고뇌하는 동상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혼란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용맹하고 힘 있는 모습의 장군상만이 있었다. 그 후 마지막 코스인 벽파진으로 향했다. 조금 걸어 올라가보니 충무공 벽파정 진첩비가 있었다. 비문에는 한글도 적혀있었고 거대한 비석이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대변하는 듯 했다.
이렇게 완도에서부터 진도까지 이순신의 발자취를 걸어보는 답사가 끝이 나게 되었다. 이순신의 명량대첩의 승리와 그의 치밀한 준비와 전술,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많은 의병들과 격군들까지. 이순신의 업적 뒤에 가려진 위대한 인물들을 알아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순신의 승리와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그는 성웅으로 불릴만하다. 그러나 그를 도운 많은 이들도 우리는 기억해야 할 때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의식이 높아져서 지역 곳곳에 숨겨진 역사적 인물들, 한말 의병들, 그리고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숨은 유적지까지. 서울의 유명한 문화유산보다도 이런 지역의 숨은 문화유산을 보는 것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한 학생으로서 이 ‘조선수군재건길’ 답사를 모든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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