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따라 떠나는 화순여행풍광이 좋아 야박하지 않고 인심이 후한 ‘동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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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내린 화순읍 큰재 전경 <화순매일신문 자료사진> © 화순매일신문 |
지인이 물었다. 화순은 어떤 고장이냐고. 한동안 망설였다.
화순군(和順郡)은 육지로 한정할 때, 전라남도 정중앙에 자리한다. 광주광역시와 생활권이 겹친 배후 지역으로 도시형 특징을 지닌다. 22개 지자체 중 고속도로가 지나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기도 하다. 무등산 남쪽 지역으로 북동쪽은 산이, 남서쪽은 들판이 자리 잡았다. 산은 험난하지 않고, 들판은 아담하다. 산골 따라 물길 따라 들어선 마을은 편안하고 정겹다. 조화롭고 순한 고장이라고 할만하다.
이렇게 답을 하고 나서 무언가 개운치 않았다.
일전에 영광을 여행할 때, 그곳 문화관광해설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화순은 여전히 교육열이 높지요?” 이보다 더 명료하게 화순의 역사와 지리를 표현한 우스개는 없을 듯하다. 향교(鄕校)가 세 곳이 있어서다. 그만큼 설명이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향교는 고려와 조선 시대 지방관청에서 운영하던 지방 교육기관이다. 요즘으로 치면 국립 중고등학교라 하겠다. 더러 두세 개 있는 지자체가 있으나 흔치는 않다.
화순이라는 지명은 고려 때 처음 사용되었다. 13개 읍·면 중 ‘능주면’은 조선 때 ‘능주목’이었다. 통일신라 시기에는 ‘능성’으로 불렸다. 두 고을이 합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일제 강점기 때 ‘동복현’이 더해져 지금의 영역이 되었다. 그래서 향교가 셋이다.
![]() ▲ 쌍봉사 철감선사부도탑. 통일신라시대 승탑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 화순매일신문 |
사람들은 강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다. 농사와 교통에 편리해서다. 4대 문명의 발생지인 메소포타미아·인더스·이집트·황하 문명도, 모두 큰 강을 끼고 발달했다. 화순군도 다르지 않다. 동복현은 동복천이, 능주목은 지석천이, 화순현은 화순천이 중심이었다. 지리가 다르면 인문도 다를 수밖에 없다. 강을 중심으로 세 갈래로 나누어 살펴야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다.
동복천은 백아산에서 시작한다. 이서면 동복댐에서 무등산에서 내려온 물과 섞인다. 동복면과 사평면을 지나 주암댐에 이르러 보성강을 만나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산이 많고 농토가 좁다. 풍광이 좋다. 동복면이 중심이고 조선 때는 동복현감을 두었다. ‘화순 11경’ 중 백아산 하늘다리, 이서 규봉암, 이서 적벽, 동복 연둔리 숲정이가 이곳 물줄기에 속한다. 인물로 삿갓 김병연과 화백 오승우, 경제학자 박현채(소설 태맥산맥, 빨치산 소년 조원제)가 있다.
지석천은 봉화산에서 발원한다. 쌍봉사 앞을 흐르는 물과 이양과 청풍에서 내린 물 등 크고 작은 물줄기가 합해진다. 상류는 계류천을 이루면서 경전선 철도와 나란히 흐른다. 이양면과 청풍면을 지나 능주면에서 화순천과 합류한다. 도곡면에서 세량지와 온천에서 내린 물도 보탠다. 나주시 남평읍을 지나 금천면에서 영산강을 만나 서해로 흘러든다. 산이 낮고 들이 넓어 생산력이 높다. 능주면이 중심이고 조선 때는 능주목사가 다스렸다. 화순 11경 중 고인돌 유적지, 운주사, 세량지, 쌍봉사가 있다. 인연을 맺은 역사적인 인물로 정암 조광조와 학포 양팽손을 먼저 꼽는다.
화순천은 무등산 남쪽 자락 안양산 아래 어림재에서 발원한다. 동면을 지나 화순읍에 이르러 무등산 서쪽면에서 흘러든 물을 모아 능주벌까지 이르는 너른 들판을 기름지게 만든다. 능주에서 지석천으로 흘러든다. 무등산 등반이 시작되는 만연산, 화순탄광이 이 물줄기에 속한다. 화순 11경 중 만연산 철쭉공원, 환산정, 꽃강길 음악분수가 있다. 다산 정약용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1777년 17세의 다산은 형 약전과 함께 화순현감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와 만연산 동림사에서 공부했다.
지금의 화순(和順)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동북쪽인 동복천 사람들은 농토가 좁지만, 풍광이 좋아 야박하지 않고 인심이 후했다. 서로를 도우며 조화(和)로웠다. 이곳의 인심은 김삿갓이 말한다. 생전 세 번을 찾았고 생도 여기서 마감했다. 얼마나 인심이 좋았을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서남쪽인 화순천과 지석천 사람들은 땅이 넓어 풍족했다. 도리를 거스르지 않고 순(順)했다. 이곳의 땅심은 ‘최항’이 증명했다. 고려 무신정권 최항(崔沆, 1209~1257, 제3대 최씨 집권자)의 본래 이름은 ‘최만전’이었다. 쌍봉사에 터를 잡고 많은 재물을 모았다고 하니 그 생산력을 알만하다.
![]() ▲ 백아산 하늘다리. 6·25 막바지 빨치산과 토벌대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화순매일신문 자료사진> © 화순매일신문 |
화순을 여행하려면, 아니 화순을 이해하려면 세 곳의 물길을 따라 살피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사와 인물과 음식이 지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취향 따라 다르겠지만 굳이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지석천에서 시작하여 동복천을 둘러보고 화순천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그 출발점은 쌍봉사와 백아산 하늘다리와 만연산 철쭉공원이 될 것이고.
쌍봉사는 고택의 정원 같달까, 대찰은 아니지만 고찰의 품격이 살아 있다. 통일신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선문이 일어났다. 통일신라시대 승탑 중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되는 철감선사 부도탑이 있다. 백아산에는 역사의 아픔이 묻어있다. 무등산과 지리산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6·25 막바지 빨치산과 토벌대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조정래가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철쭉공원은 무등산 남쪽 고갯길인 큰재에 자리 잡았다.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는 수만리 일원과 흑염소 목장과 어우러진 풍광이 일품이다.
지석천을 화순 답사 일번지로 권한 것은 세월이다. 선사시대부터 시작한 삶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물길 따라 흐르고 있어서다. 청동기 시대인 3000년 전에서 2500년 전을 전후한 고인돌 유적, 통일신라와 고려의 쌍봉사, 천불천탑의 운주사, 조선의 조광조 유배지·초장지. 일제 강점기 중국 3대 음악가 정율성 고향집, 성자 이세종 기도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정표를 간직한 간이역인 능주역. CNN이 극찬한 세량지 등. 고인돌 유적지는 화순 11경 중 제4경으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며, 이 일대에서 화순을 대표하는 봄·가을 꽃 축제가 열린다.
화순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면면히 흐르며 나아가고 있다. 강변에 앉아 조약돌을 들추면 장구한 세월의 역사와 문화와 전설과 신화가 금방이라도 살아나 그 사연을 들려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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