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칼럼>각자의 최선

화순매일신문 | 기사입력 2019/06/13 [07:30]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보은칼럼>각자의 최선

화순매일신문 | 입력 : 2019/06/13 [07:30]

▲ 김유석 정신과 전문의  © 화순매일신문


선생님이라면 제 얘기를 들어주실 것 같았어요정신과 의사라면 누구라도 기분 좋아질 만한 이야기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필요하면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해야 하는 직업을 선택한 이후로 때로는 강제로 치료받게 된 이에게서 받는 원인 모를, 게다가 무섭기까지 한 적대감을 느낀 적도 많았고 치료를 잘 받고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서 치료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받은 적도 적지 않았다.

 

어떨 때는 정신과 질환을 치료받으러 온 이가 상태가 악화되어서 타원으로 갑작스럽게 전원을 가야할 때 혹시 진단적으로 내가 놓친 부분은 없는지 아니면 치료적으로 내가 잘못 결정한 것은 없는지 자괴감을 느낄 때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두 번 얼굴을 보고 진료했던 환자가 다음 번 방문에서 고심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힘들었던 점을 꺼내 놓을 때, 그것도 굳이 다른 의사선생님의 진료 때는 말하지 않고 아껴두었다는 부연 설명을 곁들일 때, 내가 아직은 제대로 기능하고 있음을, 거기에 옆방에서 진료하는 다른 의사들보다 조금 우월하게 기능하고 있음을최소한 이 환자에게는느낄 때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은 오랜 수련으로도 어찌 안 되더라.

 

요양원에 계신다는 어머니를 동행하지 못하고 혼자서 약을 타러왔다는 보호자는 그렇게 자신의 고민거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술을 많이 드셨고 환자가 일하느라 바빠서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이 서서히 벗어날 수 없는 중독의 길을 가고 계셨더란다.

 

정신을 차리고 어머니의 상태를 세심히 살폈을 때는 이미 식사의 흔적은 거의 없는 집에 빈 술병만 가득했고, 곳곳에 숨겨두고 마신 술병들조차 보물찾기 하듯이 발견되었더란다. 여기저기 수소문 한 끝에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하시게 했고, 그 곳에서 3개월여를 치료받고 나신 어머니는 어찌된 이유인지 입원전보다 정신도 흐릿한 것처럼 보였고, 대소변도 잘 가리지 못하시게 되었다.

 

만류하는 의사를 뿌리치고 치료를 중단한 뒤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면서 정성어린 수발을 하고 나니 대소변도 잘 가리게 되시고 정신도 더 또렷해지신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의 일도 하면서 노쇠한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는 것은 너무 힘에 부쳤고, 결국은 다시 요양원으로 모시는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보호자는, 그 수고로움이 힘에 부쳐 멈출 수밖에 없었던 딸은 자주 요양원에 방문해서 단백질 제제가 필요하지는 않으신지, 어떤 비타민을 드셔야 하는지, 다시 어머니가 대소변을 못 가리시지는 않는지 노심초사 하면서도 혹시나 어머니가 지금의 상태까지 안 좋아지신 것이 알코올 중독자로 판단해 폐쇄병동에 입원시킨 자신의 잘못은 아니었는지 괴로워했고 그 자괴감에 대한 답변을,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위로를 듣고 싶은 대상으로 나를 선택했던 것이었다.

 

너무도 당연히 그것은 보호자의 잘못이 아니다. 알려진 질병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때로는 강제성을 띄더라도, 때로는 환자를 더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환자가 힘든 치료과정을 스스로 이겨내기까지 지켜봐야 되는 보호자의 안타까운 마음이 죄책감으로 바뀌면 안 된다.

 

과거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하여 머리카락도 훼손하면 안되던 그 시절, 간단한 맹장염 수술조차도 거부하며 합병증으로 사망하게 했던 것은 무지였다. 신체를 훼손하지 않았다는 뿌듯함이 환자의 질병을 낫게 해주지는 못했다. 보호자는 죄책감을 갖지 않기 위해서 환자를 위해서 꼭 필요한 치료를 외면하면 안 되는 것이고, 치료의 과정 중에 환자의 상태가 변하더라도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위의 환자는 알코올 중독의 회복 과정에 치매가 동반되었던 것 같고, 계속 술을 마실 때는 잘 드러나지 않던 문제가 금주이후에 더 두드러져 보인 것 같다고 설명드렸다. 아울러 꾸준히 약을 타다가 드시게 하고 요양원에 찾아뵙고 필요하신 것들을 살피고 하시는 것이 현재 보호자가 하실 수 있는 최선이라면 더 오래 꾸준히 최선을 다하시기 위해서라도 지치시면 안 된다고 격려해드렸다.

 

치매라는 병의 특성상 약을 드시더라도 조금씩 악화되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런 모습을 보시게 되더라도 보호자분은 어머니를 위해 하실 수 있는 최선을 다하신 것이라고 위로해드렸다. 굳이 나를 선택해서 진료를 보시고 힘들었던 속마음을 토로하셨던 보호자분께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는 위로가, 힘이 되는 격려가 되었기를, 그것이 그 분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를 나가시는 뒷모습을 보면서 빌어보았다.

 

김유석 정신과 전문의

 

<약력>

-광산구 중독관리센터 마음건강주치의

-광주지방검찰청 수사 자문위원

-노인정신건강인증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 연강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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