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죽음이 있는 사회

<책으로 삶을 바라보기-4>

화순매일신문 | 기사입력 2022/07/21 [07:01]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친절한 죽음이 있는 사회

<책으로 삶을 바라보기-4>

화순매일신문 | 입력 : 2022/07/21 [07:01]

  © 화순매일신문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옷을 입고 살아간다. 막 태어난 갓난아이로부터 시작하여 이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까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옷을 입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입는 옷은 자신을 나타내고 알리는 수단이 된다.

 

세상에 있는 다양한 옷 중에 제복이 있다. 군대나 경찰, 학교, 관청, 그리고 심지어는 회사에서도 정해진 규정에 맞춰 옷을 입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왜 제복이 필요할까? 제복을 입는 이유는 직종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군복이나 경찰복은 피아를 구분하기 위함일 것이고, 학교나 관청, 회사의 제복은 소속감을 고취 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반면에 제복은 집단 속의 개인에게 주체성과 개성을 상실하게 하는 몰개성화(Deindividuation)’를 가져오는 단점도 있다고 사회심리학자들은 지적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간이 제복을 입게 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 이를 제복의 효과(uniform Effect)’라고 한다. 이 단어는 미국의 심리학자 존슨 (R.D.Johnson)과 다우닝(L.L.Downing)의 실험 결과에 대한 논문발표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사람은 입고 있는 옷에 따라 행동이나 심리에 변화를 가져오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후에도 제복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동의하였다.

 

사람이 입는 옷, 즉 복장에 따라 사람이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세상에는 내가 입을 수 있는 많은 옷들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입게 되는 제복이 있다. 이 제복은 아무리 입고 싶지 않아도 언젠가는 입어야 할 옷이다. ‘수의이다. 무슨 망언이냐고 말씀하실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이 수의를 입게 될 것이다. ‘수의는 한문으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지는데, 수의(囚衣)는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 입는 옷이고, 수의(壽衣)는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옷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의미를 다 가지고 있는 제복을 우리 모두 입어야 할 슬픈 때가 오게 된다는 것이다.

 

2020년 사망원인 통계연보에 따르면, 주택 임종 비율은 15.6%이고 병원 임종 비율이 75.6%인데, 갈수록 병원 임종 비율은 점점 높아져 가는 추세이니 국민 대다수가 집이 아닌 병원에서 죽게 될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 따라서 삶을 마감하기 위해서 병원으로 가야 할 때 입어야 할 옷은 세련되고 멋진 옷이 아니라 환자복이라는 제복이 분명하다.

 

이 환자복이 수의이다! 무슨 수의(囚衣)인가? 요양병원에서 갇혀서 생활하며 입어야 할 환자복이다. 퇴원을 하고 싶어도 혼자 생활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에 갇혀서 살며 입어야 할 환자 제복이다.

 

무슨 수의(壽衣)인가? 요양병원이든 호스피스 병원이든 병들어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고 그래서 통증관리를 하기 위하여 죽을 때까지 입는 환자 제복이다. 환자복을 벗고 집에 돌아와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임종을 하고 싶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 집에서 생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임종을 기다리면서 죽어 다른 수의로 바꿔입지 않는 한 입고 있어야 할 환자 제복이다.

 

둘 중에 어느 경우가 되었든지 간에 죽기 전에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자복이라는 제복(수의)을 입고 병원에서 여생을 살아가다가 삶을 마감하는 현실 앞에 놓여져 있다는 것이다. 환자복을 입는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의미 없고 초라하며 쓸쓸할 뿐 아니라 비참한 병원 임종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 언젠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존재이다. 따라서 죽음은 삶을 완성하는 소중한 단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죽음의 질이 처참한 수준에 놓여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실패한 죽음의 사회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 화순매일신문

최근에 의사이자 독특하게도 인문사회의학을 공부하고 카톨릭대 의과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박중철 교수가 쓴 책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가 발간되었다. 이 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시대에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은 어떠한지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서술하고 있다. 심지어 환자를 수단화하는 의학적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현대의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의학계의 고민을 의사로서 과감(?)하게 이야기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품위 있고 존귀한 죽음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의료계의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의료인들만 변화된다고 한국 사회가 존엄한 죽음이 있는 사회로 변화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 사회를 향하여 생존경쟁이 과열되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빈곤한 많은 야만성이 남아있는 사회라고 지적하면서, 좋은 죽음에 대한 바람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존이 아닌 자신만의 가치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실존적도전이 필요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의 백미는 727죽음을 지켜내다라는 글이다. 눈물을 흘리며 읽을 수밖에 없었던 감동적인 장면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스스로 질문을 하면서 독자들에게도 같이 고민해야 할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 어디서 죽을 것인가? 그 답은 이렇다. 장소보다는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가장 초라하고 외로운 상태일 때마저도 나를 포옹하고 마지막까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

 

둘째, 마지막 순간에 고통과 불안에 휘둘리지 않고 삶의 마지막까지 주체적으로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과 함께 최대한 평온하게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것.

 

셋째, 의식이 있는 한 매일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고 싶다는 것.

 

넷째, 영국의 줄리언 반스의 책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 소개된 것처럼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웃으며 체념하는 법을 꼭 배우겠다는 것.

 

국내의 죽음학과 호스피스에 관련된 책들이 대부분 주로 외국 저자들의 책들이어서 항상 아쉬움을 갖고 있었던 참에 이번에 발간된 박중철 교수의 책은 소중한 우리들의 재산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나의 아들, 딸에게 책의 사진과 함께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반드시 읽을 것!”

 

나도 언젠가는 환자복이라는 제복을 입고 병원에 들어가 삶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내야 하겠지만, 환자복이 주는 외로움과 쓸쓸함, 초라한 모습으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을 갖고 존귀하며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은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한 죽음이 있는 사회로 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길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스페인의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는 그의 시 카스티야의 들에서 이렇게 썼다.

                               “여행자여, 길은 없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임영창 박사 <바람(HOPE) 호스피스 지원센터장/ 화순만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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