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포근한 미소로 반기는 ‘民佛’

처녀가 참외 먹고 낳았다는 고려 2대 국사
자치샘서 학서정으로 이어지는 진각국사비

화순매일신문 | 기사입력 2023/01/19 [08:01]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한없이 포근한 미소로 반기는 ‘民佛’

처녀가 참외 먹고 낳았다는 고려 2대 국사
자치샘서 학서정으로 이어지는 진각국사비

화순매일신문 | 입력 : 2023/01/19 [08:01]

 

 

  © 화순매일신문


안녕하세요
. 화순을 이야기하는 수다줌마입니다. 오늘은 화순읍에 있는 석불을 보러 가보겠습니다.

 

화순읍 대리 335번지에 위치하는데, 이용대 체육관 바로 옆에 있습니다. ‘화순 대리 입상이라고도, ‘벽라리 민불(民佛)로도 부릅니다. 정식명칭은 대리입상이지만 저는 벽라리 민불이 더 친숙합니다. 이 석불이 있는 마을이 예전에는 벽라리여서 그렇습니다. 두 그루의 나무 사이에서 어린아이의 미소로 맞이합니다.

 

 

  © 화순매일신문

돌로 만들어진 이 불상은 키가 3.5m 정도입니다. 멀리서 보면 대지에 우뚝 솟은 남근처럼 우람합니다. 가까이서 보면 해맑은 미소를 띤 아이 같습니다. 아주 푸근한 인상이 돋보입니다.

 

이 석불은 돌기둥에 가까운 자연석을 사각형으로 대충 다듬은 뒤 앞쪽에 얼굴 부분만 도드라지게 새겼습니다. 석불의 얼굴은 둥그런 눈썹과 눈, 장승에서나 볼 수 있는 넓적한 코, 입은 동그란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턱과 목이 구분되지 않고, 목 부분이 바로 어깨로 연결되는데 이러한 기법은 조선 후기 돌로 만든 장승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라고 합니다.

 

혹자는 관세음보살로 보기도 합니다. 오른손은 가슴 앞에 대고 왼손은 배 아래로 내려 연꽃을 들고 있는 모습 때문입니다. 그러나 옷 주름은 매우 단순하게 표현되었으며 관세음보살의 상징인 보관(普觀)이 없어 분명치는 않습니다.

 

석불의 정체를 놓고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화순 출신 고려 2대 국사인 진각국사 혜심의 탄생 설화와 연결하여 진각국사 비는 주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위엄보다는 친근한 미소를 띠고 있어 사람들이 돌미륵이라고 부르는 것에 맞추어 민간신앙의 표현이라는 주장입니다.

 

오늘은 진각국사 비라는 주장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벽라리 마을 어른들은 지금도 진각국사 비라고 합니다.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은 화순읍 삼천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탄생 설화가 범상치 않습니다.

 

옛날 배 씨 성을 가진 아전이 부인과 딸과 살고 있었습니다. 배 씨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배 씨 처녀는 매일 새벽 샘에 나가 맑은 물을 길어 와서 정성을 다 해 아버지가 빨리 옥에서 나오게 해달라고 지성을 올렸습니다. 하루는 그 샘에 참외가 둥둥 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겨울에 왠 참외일까 하면서도 먹고 말았습니다. 참외를 먹었으니 배가 불렀겠죠. 그런데 그 배가 아니라 아이를 잉태한 것이지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수태한 것입니다. 부모에게 모르게 하려고 복대를 두르면서 열 달을 지냈습니다.

 

아이를 낳았지만 두려웠습니다. 벽라리 민불 바로 건너편에 있는 정자나무 밑에 버리고 말았죠. 하지만 열 달 동안 태에 품은 정을 잊지 못해 정자나무에 가보니 몇 마리의 학들이 돌보고 있었습니다. 배 씨 처녀는 범상한 아이가 아닌 것으로 여겨 데려다 길렀습니다. 진각국사 출생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배 씨 처녀가 물 길으러 갔다가 참외를 먹은 샘이 바로 오늘날 향청리 자치샘입니다. ’자치샘은 화순 전통시장 근처 광주은행 바로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학이 보호하였다는 곳을 학서정이라 부르고, 이 석불을 진각국사 비라 하였답니다.

 

 

 

 

현재 벽라리 민불이 있는 장소는 옛날 영산강 물이 들어왔었습니다. 밀물과 썰물이 만나는 곳이라 새우가 많이 나와 하촌(鰕村)이라고도 하였답니다. 배가 들어왔음을 알려주는 배 바위가 바로 서라 아파트 앞에 서 있는 바위라고도 연세 지긋한 마을 어르신들이 이야기합니다.

 

석불의 해맑은 미소에 담긴 민중들의 이야기와 염원은 널리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또한 이 석불이 위치한 장소는 옛날 보성과 화순을 지나는 길목입니다. 통행이 빈번한 곳에 불상을 세워 쉽게 대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개인의 기복과 마을의 안녕을 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각자의 소원을 가진 민중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학자들에게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합니다.

 

옛 시절 배 씨 처녀 이야기와 미혼모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한없이 포근한 미소로 반기는 대리입상을 떠올리며 인근에 상호도 포근한 카페 쉼표에서 따스한 차 한잔은 어떠신가요.

 

화순을 이야기해주는 수다줌마였습니다.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최순희 전남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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