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면 용곡리에 있는 백아산 하늘다리로 가 보겠습니다. 빨치산과 토벌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의미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빼어난 풍광 속에 가려진 아픈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멀리서 보면 석회암 바위들이 흰색으로 보여 소나무가 바람에 움직일 때마다 마치 흰 거위가 날갯짓하는 것처럼 비추어져 백아산(白鵝山)이라 합니다. 호남에서는 드물게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화순군 북동부에 있는 백아면에 자리하여, 곡성군과 경계를 이룹니다. 무등산과 지리산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로 6·25전쟁 때 빨치산 유격대가 진지를 세우고 병기공장을 지어 은거(隱居)했던 곳입니다. 하늘다리로 연결된 마당바위는 빨치산의 천연 초소였습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9권 ‘빼앗겨 가는 해방구’에 이곳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원제, 실제 인물은 소년 빨치산 ‘박현채’다. 경제학자 박현채로도 불린다. 면 서기이자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고, 중학교 때부터 <자본론>을 읽었던 영민한 학생이었다. 광주서중 3학년 때 16세의 나이로 입산하여 빨치산 문화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뼛속 깊이 파고드는 백아산의 겨울을 마주했던 피 끓는 청춘을 백아산 마당바위에 바쳤다.”
백아산 토벌 작전은 3년간 진행됐고 물자와 인명의 피해도 극심했다고 합니다. 처절한 혈투 속에 많은 젊은이와 무고한 양민이 희생되었고 백아면 주민들도 엄청난 피해를 보았습니다.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희생된 숫자만 천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백아산 빨치산이 최종적으로 섬멸(殲滅)된 것은 1955년 3월.
백아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입니다. 저는 가장 쉬운 백아산 관광목장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간간이 보이는 험준한 칼날 능선이 아름다워 소나무 숲길과 산죽나무 길을 따라 걷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6·25전쟁 때 대한민국 군경과 빨치산 사이에 치열한 혈전이 벌어진 전적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약 한 시간 남짓 산을 오르니 하늘다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리 위에 서면 저 멀리 지리산과 무등산이 보이는 지리적 요충지임이 짐작이 됩니다. 특히 마당바위 부근과 남쪽 능선의 암릉, 철쭉 군락지가 대표적인 볼거리입니다. 5월이 되면 백아산 정상 부근 마당바위 아래에 있는 약수터 부근에서 전쟁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와 철쭉제가 열립니다. 당시의 아픔을 기억하는 듯 진한 선홍색으로 피어나는 철쭉꽃이 아름답습니다.
해발 810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닙니다. 서너 시간이면 정상에 다녀올 수 있습니다. 화순 8경 중 3경으로 남도의 작은 설악이라는 애칭도 붙었습니다. 풍광도 즐기고 역사의 흔적도 살피며 다녀오시기를 권합니다.
화순을 이야기하는 수다줌마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순희 전남문화관광해설사 <저작권자 ⓒ 화순매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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