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

생각이 많은 당신을 위한 책

김민지 문화평론가의 방방곡곡 | 기사입력 2023/03/30 [08:01]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

생각이 많은 당신을 위한 책

김민지 문화평론가의 방방곡곡 | 입력 : 2023/03/30 [08:01]

몸이 불편하면 금방이라도 의사를 만나러 간다. 같은 몸인데도 마음이 아플 때는 온도 차가 다르다. 쉽사리 처방전 받으러 가길 주저한다. 주변의 편견으로 정신건강의학과 문턱을 넘는 게 쉽지 않다.

 

마음이 아프면 종종 책을 읽는다. 오래된 습관이다. 책장에 꽂혀있던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에 손이 간다. 책 표지가 인상적이다. 푸르른 표지에 불빛, 의자 한 개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무슨 의미일까.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책을 펼쳤다. 읽는 내내 병원에 방문하여 의사와 마주한 듯하다. 직접 만나 상담받는 느낌이다.

 

누구나 겪을 만한 심리 문제에 관한 실질적인 처방이 담겼다. 자존감, 불안, 미래, 관심에 관한 내면의 문제와 가족, 친구, 직장, 연인, 사이의 관계에서 겪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다른 사람의 처한 상황에 공감되어 다독거려 줄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혹시 수면 아래 숨겨놓은 나만의 상처가 올라올지도 몰라 걱정도 된다.

 

▲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양재진, 양재웅 지음, 21세기북스, 2021), 가격 16,000원  © 화순매일신문

책은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정신건강의학에 관련된 상담을 재가공하여 담았다. 1부는 세상에 치여 미처 나를 돌보지 못했다면으로 자존감, 불안, 미래, 관심을 다루었다. 2부는 나와 타인의 마음 균형을 찾지 못했다면으로 가족, 친구, 직장, 연애로 구성되었다. 세 부분이 인상 깊다.

 

나의 못난 부분만 계속 보입니다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루를 열심히 살았는데 저녁이 되면 속상하다. 할 일 목록을 빼곡하게 적었는데 오늘 해야 할지 미뤄야 할지 갈림길에 선다. 체력과 시간, 일의 중요도를 안배하지 않고 잔뜩 계획만 써놓았다는 사실을 얼마 전 알게 되었다. 책은 타인과 정서적인 거리를 두듯, 자기 자신과도 객관적으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자신만의 장단점을 받아들이고, 강점에 집중해보자.

 

직장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혼내는 상사,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대인관계로 힘들어하는 직장인이 많다. 직장은 사람과 사람이 모인 곳이고 동료와 상사라는 관계가 존재한다.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상사에게는 힘들더라도 정서적으로 다가가 대화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상사일수록 되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중 가장 공감했던 내용은 가스라이팅이다. 연극 <가스등>에서 유래한 용어다. 아내의 이모는 제법 많은 유산을 남겼다. 보석이다. 남편은 그것을 빼앗고자 숨겼을 곳이라 의심되는 다락방을 뒤진다. 집안의 조명을 어둡게 하고서. 집이 점점 어두워진다고 느낀 아내는 남편에게 말하지만 믿어주지 않는다. 도리어 아내를 이상한 사람처럼 여긴다.

 

가스라이팅 상황은 흔하다. 당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 인간관계가 좁아 자신이 그런 위치에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힘든 일이 생겨도 상의할 사람이 없어서다. 주위에 혹시 그런 사람은 없을까.

 

관계 속에서 힘들어하는 사연 중 가족이 많았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어쩌면 가깝기에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엄마의 가스라이팅 때문에 힘들어했던 사연도 보인다. 부모도 자녀를 양육할 때 조종하려는 욕구가 있겠다는 생각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보았다. 혹시 나도 그런 적은 없었는지.

 

며칠 전 SBS ‘집사부일체에 정신의학과 전문의 형제 양재진, 양재웅이 사부로 출연했다.

 

 

▲ 지난 3월 18일 SBS <집사부일체> 방송 중에서  © 화순매일신문


행복을 위해 피해야 할 세 가지키워드를 알려줬다. 그중 하나가 가스라이팅이었다. 양재진은 세뇌와 가스라이팅의 가장 큰 차이는 당하는 사람이 당하는 줄 모른다. 세뇌는 당하는 사람도 자신이 잡혀있고 세뇌당하는 걸 안다. 가스라이팅은 훨씬 교묘하고 고차원적이다. 당하는 사람이 당하는 걸 인지 못 한다.”라고 가스라이팅의 무서움을 전했다.

 

가스라이팅은 보통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부터 시작한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타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내가 길들여졌다는 걸 알게 된다. 가스라이팅에서 헤어나올 방법은 독립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의지하거나 부모 자녀 사이라면 경제적인 독립도 포함된다. 시작은 어려울 수 있다. 일단 타인과 나를 분리하는 연습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다음 개인적인 대상으로서 독립하는 훈련도 권했다.

 

형제가 공동 저술하였다. 양재진은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정신과 전문의로서 구체적인 처방과 소신을 담은 솔직한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또 다른 저자 양재웅은 날카로운 심리 분석과 사려 깊은 이야기로 사연에 맞는 실질적인 치료를 시작할 수 있도록 힘을 더한다.

 

많이 아팠나 보다. 마음 처방전 같은 사연을 따라가다 보니 눈물샘이 멈추지 않는다. 가슴 한 켠이 후련하다. 타인을 통해 나를 조망해 볼 용기가 생긴다.

 

혹시 내가 '고슴도치'는 아니었는지 생각한다. 가시를 바짝 세워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지는 않았는지, 상대방을 아프게 한 적은 없었는지… … .

 

생각은 많고 자존감이 낮아질 때가 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 곁에 두고 들추어 보길 권한다.

 

김민지 문화평론가의 서평은 네이버 블로그(mjmisskorea) ‘애정이 넘치는 민지씨에서도 볼 수 있다. 방방곡곡은 다양한 책과 문화 속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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